신원에이전시 | 너만을 찾아 나의 청춘 다 바쳐 - 쉬즈모 전기
작가 바이뤄메이는 독특한 언어와 객관적인 시각으로 복잡한 남녀 감정을 겪어야 했던 시인 쉬즈모(徐志摩) 일생을 이야기하며 그의 가장 진실된 모습을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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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을 찾아 나의 청춘 다 바쳐 – 쉬즈모 전기

작가 바이뤄메이는 독특한 언어와 객관적인 시각으로 복잡한 남녀 감정을 겪어야 했던 시인 쉬즈모(徐志摩) 일생을 이야기하며 그의 가장 진실된 모습을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인다.

 

 

저자 소개

 

바이뤄메이 : “유미전기(唯美传记)”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

중국CCTV-3채널의‘티비로 보는 시와 산문’방송 중 집필했던 40여편의 산문이 방송 됨.

지은 책으로는<당신이 평안하다면 맑은 날입니다>, <가장 깊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세상의 모든 만남은 오랜 헤어짐 후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알기 때문에 자비롭다> 등이 있다.

 

 

[ 참고자료 ]

 

■ 쉬즈모(徐志摩) 소개

저장성[浙江省] 하이닝[海寧] 출생. 상하이[上海]의 후장[滬江]대학과 베이징대학교에서 배우고, 미국과 영국에 유학하였다. 귀국 후 각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인으로서 많은 작품을 썼으며, 원이둬 [聞一多]와 함께 중국 현대시의 개척자가 되었다. 1924년에 인도의 시인 R.타고르가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통역을 맡았고, 타고르 소개에 공헌하였다.

1928년에는 후스[胡適]·량스추[梁實秋]·원이둬·뤄룽지 [羅隆基] 등과 함께 신월파(新月派)를 조직하였다.
1931년 8월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죽었다. 시집에 《피렌체의 일야(一夜)》 《즈모[志摩]의 시》 《맹호집(猛虎集)》 등이 있고, 서간집 《애미소찰(愛眉小札)》, 일기 《즈모일기》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쉬즈모 [徐志摩(서지마)] (두산백과) 발췌

서지마의 짧은 인생은 온전히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위대한 시를 지은 것도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였고, 그가 삶을 마감한 것도 한 여인을 위해서였다. 서지마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는 현대인에게 감동을 주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감하게 한다.

그는 “저는 망망한 인간의 바다에서 내 유일한 영혼의 짝을 찾으려 합니다. 찾으면 저의 행운이요, 찾지 못하면 저의 운명입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시인이 스스로 자신의 짧은 일생을 해설한 주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혼의 짝’을 찾기 위해 시인은 일생 세 번의 커다란 감정 변화를 겪었고, 장유의(張幼儀), 임휘인(林薇因), 육소만(陸小曼) 세 여인의 삶과도 얽혀야 했다. 그들은 함께 시인 서지마를 창조해냈고, 그들 각자도 시인으로 인해 자신들의 운명을 수정해야 했다.
첫 부인 장유의는 소주사범학교 출신이다. 당시 절강성의 부호이던 두 집안의 혼약으로 시인과 열여섯 살에 결혼하였지만 둘째아이를 임신한 채 이혼에 합의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녀는 이혼한 뒤 독일에서 홀로 아이를 출산하고, 페스탈로치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였다. 귀국하여 서지마의 부모를 봉양하면서 운상회사와 상해여자저축은행 등을 경영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의 종손녀가 1996년 9월 미국에서 출판한 영문저서 『전족과 양장―장유의와 서지마의 가정과 그 변화』에 의하면, 그녀는 이혼한 뒤에도 서지마 부모님의 수양딸이 되어 서지마의 아들과 손녀를 잘 보살폈고, 대만판 『서지마 전집』도 주도적으로 계획하여 출간했다고 한다. 서지마는 1922년에 이혼할 당시 「웃으며 번뇌의 매듭을 풀고―유의에게 드림」이라는 시에서 통절하게 봉건예교를 비난하면서 쓰디쓴 번뇌의 매듭을 풀고 자유를 찾은 기쁨을 노래하였다.

그의 두 번째 여인인 임휘인은 절강성 항주 출신으로 아버지 임장민을 따라 영국에 가서 1920년에 런던 성마리학원에 합격하였다. 서지마는 영국에서 임장민을 찾아갔다가 그녀를 만나 첫눈에 반하였다. 당시 임휘인은 여덟 살 연상인 서지마가 구애하자 마음이 흔들렸는데, 그녀는 이미 국학의 큰 스승 양계초의 장자 양사청과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서지마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장유의에게 이혼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임휘인은 1921년 가을에 중국으로 돌아와 서지마 대신 양사청을 선택하였고, 1928년에 그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건축과 무대예술을 공부하여 중국 건축학 방면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일로 많은 이들이 그녀가 서지마의 구애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를 고뇌에 몰아넣었다고 오해하였다. 또한, 서지마가 그녀의 강연을 들으러 가던 중에 비행기 조난사고를 당한 것을 두고도 그녀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의 이목에 상관하지 않고 그가 죽은 뒤 「지마를 애도하며」, 「서지마의 죽음 4주년을 기념하며」 등의 작품을 통해 그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시인의 영향으로 그녀는 1931년 봄부터 시를 지었다. 만약 서지마가 없었다면 그녀가 신월파의 명성 높은 여류 시인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서지마의 세 번째 여인은 육소만이다. 서지마는 임휘인으로 인하여 낙심하지만 이후 요염하고 정열적인 여인 육소만(陸小曼)을 만나 재혼을 한다. 육소만은 서지마 친구의 아내였다. 그녀는 서지마와의 결혼을 위해 이혼까지 하였다.

서지마가 임휘인의 강연을 듣기 위해 가다 비행기 사고로 죽기 바로 전날에도 불같은 성격의 그녀는 서지마를 담뱃대로 때리며 화를 낼 정도로 감정이 격한 여자였다. 이에 서지마는 상해의 집을 나와 남경을 거쳐 임휘인을 만나러 북경으로 가다 불귀의 객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지마의 사랑과 세 여인 (중국 현대문학 작가 열전, 2014. 7. 25., 한국학술정보(주))

저자

바이뤄메이

출간

2016년 8월 12일

분량

258 페이지

분류

소설

언어

중국어 간체

Category
소설, 중국, 대만외
Tags
바이뤄메이, 소설, 쉬즈모, 중국, 중국어간체, 청춘